[듀나] 히즈올댓, 듀나스 올 댓 Djuna’s all that : 이서영 리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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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즈 올 댓(He’s All That)〉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쁘다. 이는 내가 듀나를 떠올렸을 때 가장 ‘듀나’로 인식되는 작품이 〈히즈 올 댓〉이기 때문이다. 듀나의 작품을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에 다니던 무렵이었다. 듀나의 단편집 《태평양 횡단 특급》은 한국 문단에서 소위 ‘장르 문학’을 다룰 때 언급되는 “문화 게릴라”니 “기발한 상상력”이니 하는 표현들로 수식되어 있었다. 나는 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를 다니면서 제법 ‘이것이 문학입네’ 하던 꼬맹이였기 때문에 그 수식들에 매료되어 듀나의 책을 펼쳤다. 그리고 나를 매료시킨 건 그런 수식과는 별로 상관없는 지점들이었다.

〈히즈 올 댓〉의 주인공인 큰아버지의 삶은 하이브리드(hybrid) 그 자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순정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 책이 발행된 때가 2002년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이 단편은 그 자체로 ‘장르적 말하기’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비평으로도 볼 수 있겠다. 문학을 포함하여 예술이란 그 장르에 따라 부여되는 발화 방식이 있게 마련이다. 한국에서 그 발화 방식을 가장 첨예하게 따라가는 장르란 바로 ‘문단문학’이라는 장르인데, 듀나는 ‘문학과지성사’라는 굴지의 ‘장르문학’ 출판사에서 출간한 이 단편집에서 그 발화 방식을 뒤섞는, 또한 뒤섞을 수밖에 없는, 뒤섞음으로써 무언가를 도출해 내는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웠다.

우리 모두의 삶이 그렇듯 주인공인 큰아버지의 삶도 불행과 행운이 뒤섞여 있다. 악의적일 수 있는 우연들은 비난당하기보다 주인공으로써 문학에 자리를 잡는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마땅히 큰아버지지만, 동시에 하이틴 드라마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로 유명한 약강 5보격이 결합한 형태인 뒷골을 짜릿하게 하는 사랑의 하이브리드 역시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다. 이걸 낳은 것이 바로 큰아버지의 삶이며, 이걸 유지해 가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가 된다.

앞서 말했듯, 예술이란 그 장르에 따라 부여되는 발화 방식이 있게 마련이다. 듀나의 여러 출간작 가운데 내가 사랑하는 책 중 하나는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인데, 발화 방식과 그것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우리에게 아주 풍성한 이해를 안겨주는 책이다. 이 책을 언급하는 이유는, 듀나라는 작가가 이 공고한 ‘장르적 문법’이 형성된 과정과 맥락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오랫동안 관찰해 왔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다. 대중문화의 문법과 다른 발화 방식을 자본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는 끝내 자신이 말하고자 했던 방식을 찾아 밤거리를 헤맨다.

밤거리에서 꿈꾸던 〈쉬즈 올 댓(She’s All That)〉의 배우 레이철 리 쿡을 마주한 큰아버지는 자신이 원하던 문학의 해답을 찾아낸다. 그건 배우가 준 것도 아니고, 배우와의 대화가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큰아버지는 자신이 갇혀 있던 자폐적인 환경에서 하이브리드를 도출해 냈고, 여전히 문학은 자폐적인 꼬리를 물고 자기 안에서 완결된다. 해답을 찾았다는 건 그저 환상일 뿐이지만, 동시에 명백한 사실이기도 하다.

나는 이 감동적인 장면을 ‘오타쿠의 앞선 걸음(Otaku’s earlier steps)’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우리는 언제나 소통하고 있다는 환상 속에 살지만, 그 소통은 결국 자기 내부에서 완결된다. 문학과 예술이란 그렇게 내부에서 완결되는 꿈의 종착지 같은 것이다. 삶은 우리에게 폭력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폭력의 끝에서 하이브리드를 만들어낸다. 그걸 우리는 예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오래된 것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같은 뻔한 수식들을 접하곤 하는데, 예술에 들어맞는 발화 방식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대체로 그것들은 새롭지 않다. 우리 내부에서 빚어낸 폭력의 하이브리드를 나는 ‘새로운 시선’보다 ‘듀나의 모든 것(Djuna’s All That)’이라고 부르고 싶다(물론, 〈쉬즈 올 댓〉에게도 조지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Pygmalion)〉이 존재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할 것).


※흔히 이런 종류의 영화 평론들이 영문을 다루는 방식을 차용하는 〈히즈 올 댓〉을 따라 나도 이런 영문 병기법을 써봤다. 굳이 이럴 거 있나 싶어도, 부디 독자 여러분께서 경애의 표현으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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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영

단독 저서로 《악어의 맛》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유미의 연인》이 있다. 기술이 어떤 인간을 배제하고 또 어떤 인간을 위해 일하는지, 혹은 기술을 통해 배제된 바로 그 인간이 기술을 거꾸로 쥐고 싸울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