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 오래된 열차에서 낡은 책벌레가 추억하나니 : 홍준영 리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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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께서 나와 같은 낡은 책벌레라면 동감하리라 믿는다.

오래되고 굼뜬 책벌레라면, 서점에 들러 서가에 꽂힌 책들 가운데서 처음 만나는 작가를 발견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심장이 뛸 거다.

‘내가 처음 본 작가라니, 이 사람은 누구지? 여태 왜 몰랐을까? 한번 봐볼까?’

그러고는 서가 앞에 석상처럼 서서 읽어나가겠지. 심지어 맘에 드는 글이라고? 아마 그 책을 집어 든 책벌레는 이 만남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게 그 작가의 작품 목록의 첫 시작이 아니라 할지라도 영원히 이 작품으로 그 작가를 기억하게 되겠지. 이전에 무슨 명저를 썼든, 앞으로 무슨 명저를 쓰든 말이다.

책이란 매체에 사로잡힌 나 같은 낡은 책벌레에겐 처음 내 가슴으로 날아와 앉은 그 반디 같은 책이 그 작가를 추억하게 만든다. 듀나 선생의 〈태평양 횡단 특급〉이 그런 작품이었다.

듀나 선생은 30년 넘게 한국 SF계에서 정력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현역 작가고 매번 신작을 갱신하시지만, 이 작품 덕분에, 이 오래된 책벌레에게는 듀나 선생을 기억할 때마다 지구를 뱀처럼 둘러싼 철도 제국으로 기억되곤 하는 것이다. 듀나 선생은 고전적인 열차의 구조를 떠올릴 때마다 연상되는 두 작가 중 하나다(다른 한 분은 애거사 크리스티다).

A4 용지로 여덟 장이 안 되는 분량에 담긴 거대한 담론과, 기괴하고 고딕적인 열차들과 철로, 그리고 과거를 닮은 미래상을 가진 세계라니. ‘오래된 미래’(스팀펑크의 클리셰로 분명 미래보다 발달했지만 고전적 세계를 다룬 세상)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빠지지 않겠는가.

사실 ‘오래된 미래’라는 단어만큼 이 작품과 잘 어울리는 키워드도 없을 것이다. 18세기 ‘빈 의회’다운 장식미가 넘치는 고전적 색채와 경직된 사회상이 주도되는 세계, 열차가 아니라 철마라고 불려야 할 구식 기관차들이 사회를 지배한 세계지만, 전자뇌를 탑재한 기계가 존재할 만큼 현대적 기술을 갖춘, 아니 그보다 더욱 발달한 세계다. 작품의 주요 무대가 되는 ‘아즈텍 신성 공화국’조차 종교적 교리의 모순 때문에 양지로 나올 수 없을 뿐,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전자뇌 세공 기술을 가진 첨단 국가로 나올 정도니까.

〈태평양 횡단 특급〉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전 세계의 여객과 화물들을 지배하는 다국적 철도 기업 수장의 회고록’이다. 대체로 제국들을 세운 주인의 회고록의 시작이 대부분 그러하듯 첫 문단은 그녀 자신의 영토와 일생으로 이루어져 있다. 380년간 이어온 거대한 제국의 영토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배치하며 말하는 것으로 그녀가 자신의 제국 영토인 열차와 자신의 숙명을 논하는데, 보통 여기서 독자로 하여금 시작부터 거대한 세계관에 압도되게 만든다.

대체 역사라는 장르의 태생상, 창조된 역사의 거대함을 담기 위해 장편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 장르의 시조인 〈높은 성의 사내(The Man in the High Castle)〉라든지 장르의 명저로 손꼽히는 〈당신들의 조국(Fatherland)〉을 생각해 보라. 바뀐 지구의 거대한 광경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페이지를 잡아먹어야 하는지 말이다. 그렇기에 이 장르는 바뀐 세계를 논하든 바뀌는 과정을 그리든 연대기적인 구성이 기본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단편마저도 연대기적 순서대로 흐르는 단상이 많은데, 역사라는 흐름 안에서 역사서의 한 단락 같은 느낌으로 적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리라(만약 다른 방식이 더 있다면, 아직도 내 독서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듀나 선생은 회고록 형식을 빌려, 기록자가 기억하는 핵심 단어 하나를 구조로 삼아 비연대기적 구조로 대체 역사 소설의 분량을 단편화했다. 화자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를 핵심 축으로 삼아 여러 시간대를 오가면서도 이야기가 늘어지지 않고 단편으로 끝나게 만든 것이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태평양 횡단 특급’이며, 이 작품의 화자이자 ‘국제철도회사’의 회장인 그녀가 자신의 최대 치적으로 삼는 작업물이기도 하다. 그녀가 얼마나 이 ‘태평양 횡단 특급’을 자랑스러워하는지는 전대 회장인 아버지의 공적인 대서양 횡단 특급과 비교할 때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갖은 방해 공작과 테러에 시달리고 200여 년에 걸친 대공사를 통해 겨우 완성한 아버지에 비해 자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두철미한 지도 아래, 보다 적은 피해로 태평양 횡단 특급을 완공시켰음을 과시하는 대목에서 깊게 묻어난다. 이 회고록은 회사의 역사와 자신의 일생을 소개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은 이 업적을 칭송하고자 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승리와 자본주의 제국의 탄생을 시대의 소명이자 반드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필연으로 여기면서 종국에 남편과는 다른 의미의 미소를 짓는 그녀는 끝내 자신의 소명을 이루어냈음에 스스로 찬탄하며 스스로에게 미소 짓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태평양 횡단 특급〉이 쓰인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이 작품이 논하고자 하는 주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권력의 주체가 자본주의냐 제국주의냐에 따라 달라질 뿐 시간이 지나도 그 논지는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이 작품의 매력은 앞서 논한 주제성을 대놓고 노출하거나 표현을 핑계로 과격한 선동을 일삼는 행위를 지양한다는 점이다. 대중문학적인 논지에서 대체 역사적인 재미를 밑밥으로 깔면서 독자가 조금씩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독과점과 권력이라는 횡포 속에 살고 있으며, 그들이 만든 함정에 스스로 머리를 들이밀고 산다. 소설 속 열차는 요즘의 애플이나 구글 같은 거대 테크 기업들의 만행이나 다름없으며 우린 작중의 테베나 고려 사람들처럼 독과점 대기업에 의해 머리가 잘려 시장통에 매달려 있는 셈이다.

여러 대중문학적인 즐거움과 그에 걸맞은 주제성이 대학 시절 나의 머리를 강타했고 이 작품과 사랑에 빠졌으며 이후, 듀나 선생의 저작에도 집중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러했듯이 당신도 그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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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영


《이방인의 성》으로 데뷔. 문학이라는 오래된 성채에 홀로 남은 낡은 독서가. 새로운 소설을 집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