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 대리전과 함께 하는 성지 순례 : 서애라 리뷰하다


서애라

 

 

부천 상동역에 내리꽂힌 나는 미리 연습한 대로 핸드백에서 선글라스를 꺼내어 쓴다. 손가락이 꼬여서 약간 고생하지만, 무사히 양쪽 귀와 중앙 돌출부인 코를 이용해 물건을 신체에 안착시킨다. 그런데 생각보다 물건은 안정적이지 않다. 자꾸 흘러내린다. 옆에서 한숨이 들려온다.

“거꾸로 쓰셨어요.”

섬세한 손가락들이 내 얼굴로 다가와 선글라스를 잡아당기더니 수직으로 180도 회전시킨 뒤 다시 얹어준다. 한결 안정적이다. 손가락의 주인이 말한다.

“고객님께서 맞춤형 가이드를 원하셔서 저는 그대로 준비했습니다. 진짜 그대로 진행하실 건가요?”

“네. 데이터를 가져왔어요. 제가 입수한 가이드북대로 진행하고 싶거든요.”

나는 핸드백에서 PDA 주석1) 를 꺼내 데이터를 찾는다. 〈《대리전》과 함께하는 부천 산책〉주석2)을 열어서 첫 코스를 확인한다.

“부탁하셔서 그 기기를 어렵게 구하긴 했습니다만, 지금은 아무도 그거 안 써요.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이라는 걸 쓰죠.”

가이드가 지구인들이 흔히 ‘짜증’이라고 부르는 감정을 담아서 말한다. 지구에 대해 선행학습한 바에 따르면 이럴 때는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런가요? 저는 꽤 지구문화를 고증했다고 자부하는데요.”

가이드는 말없이 ‘택시’를 잡는다. ‘택시’는 나도 안다. 위대한 우주 전쟁을 다룬 명작 《대리전》에 나오는 지구의 운송 수단이다. ‘코어 앤서블’ 주석3)이 운반된 기구기도 하다. 가슴이 뛴다. 지구인의 감각을 이용해 ‘택시’를 느껴본다. 피부와 택시가 마찰하며 촉감을 일으킨다. 오오! 이것이 택시의 느낌이다! 가이드가 손을 뻗어 내 뺨을 앞좌석 등받이에서 떼어낸다. 그리고 내 상체를 뒤로 밀어 등을 좌석에 붙이게 만든다. 가이드가 4번 은하어의 제1음성어 변종으로 말한다.

“크르므므프샥크흐흐렐(한국어 번역: 눈에 띄게 굴지 마요).”

나의 얼굴 부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한국어로 답한다.

“옷을 입고 있어서 등은 별로예요. 옷 없이 느끼고 싶어요.”

막 출발한 택시가 크게 흔들린다. 운전사가 헛기침을 크게 한다.

눈앞에 부천 홈플러스가 지나간다. 우리가 그곳을 지나치는 이유는 그 유명한 무나키샬레 아이스크림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대신에 우주 전쟁에서 지구와 은하 연합을 구해낸 위대한 인물들의 사무실이 있었던 송내역 인근을 한 바퀴 돈다. 그런 다음에 달빛 모텔 주석4)로 간다. 모텔은 생각보다 정갈하다. 겉모양은 그렇다. 내부는 모르겠다. 들어갈 수가 없다. 은하관광위원들의 공식 성지순례로 투숙 예약이 꽉 차 있다. 이곳에서의 숙박은 불가능하다. 물론 나는(그리고 위원들도) 지구인처럼 잠을 자거나 쉬러 가는 게 아니다. 이곳 자체가 성지라서 들어가려는 것이다. 가이드가 내 요청으로 모텔 주인에게 402호 문짝이라도 볼 수 없느냐고 사정하지만 거절당한다.

아쉽지만 다음 코스로 이동한다. 가기 전에 핸드백에서 ‘지구방위대’ 전자총을 꺼내서 두 번 당긴다. ‘윙윙윙! 지구방위대다! 항복하라!’ 주석5)가 총 속에 녹음된 한국어로 두 번 울린다. 나는 “거기 서라!”를 크게 한 번 외친 후 플라스틱 총을 다시 핸드백에 넣는다. 왜인지 모르지만 가이드가 멀찍이 떨어져서 딴청을 부리다가 내 의례가 모두 끝난 뒤에 다가온다.

다음 코스는 매우 중요한 장소다. 그 유명한 삼정초등학교다. 어째서 부천 종합운동장이 아니고 삼정초등학교 운동장일까? 우주의 운명을 건 전쟁이라면 스케일이 종합운동장쯤 되어야 하지 않나? 왜냐하면 그 이야기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패권을 두고 다투던 종족들이 지름 1미터 정도의 공을 퉁퉁 튀겨 올리며 들어갔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종합운동장은 너무 짜맞춘 느낌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 전쟁은 실재했다.

삼정초등학교의 담벼락과 방음벽 사이 투명 창으로 운동장을 들여다본다. 들어갈 수는 없다. 나 같은 우주 관광객은 입구에서 경비에게 출입을 저지당한다고 한다.

나는 담벼락에 붙어 서서 이 전쟁사를 기록한 ‘모르는 사람 많은 유명인’ 주석6) 이 창조한 문장을 떠올린다. 위대한 부천, 우주의 성지, ‘무개성적이고 대체 가능한 곳’. 주석7) 그리고 조금 운다. 눈물! 아, 눈물! 나는 여행 전에 학습한 대로 선글라스를 벗고 화장을 고친다.

“왜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죠?”

“코가 빨갛고 추리닝을 입은 주정뱅이 중년 남자가 핸드백에서 립스틱을 꺼내 바르고 있으니까요.”

“그게 어떤데요?”

“아닙니다. 그냥 갑시다.”

가이드의 표정이 어둡다. 가이드의 시선을 좇아가니 길 건너에서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선캡을 쓴 지구­한국인­중년­여성이다. 자외선 차단 필름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 눈에서 서늘함이 느껴진다. 그저 운동하러 나온 평범한 지구인이 아닌 게 확실하다. 그는 ‘해결사’ 주석8) 다. 내가 공식 성지순례인이 아니라는 걸 눈치챈 게 아닐까? 얼른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이드의 생각도 나와 같다. 그는 원피스 자락을 휘날리며 택시를 잡는다. 택시 안에서 나는 생각한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창조한 ‘동네 SF’ 주석9)라는 용어는 왜 사라졌을까? 듀나도 썩 마음에 들어 했던 것 같은데.

 

※본 리뷰는 〈대리전〉 속 외계인 관광객의 시점으로 쓴 가공의 기행문입니다. 영감을 주신 전혜진 작가님의 칼럼에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대리전〉을 읽지 않은 분들에게 스포일러 없이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리뷰를 쓰고 싶었습니다. 하나는 성공했고 하나는 실패한 느낌입니다. 첨언하여 본 리뷰는 각주까지 포함하여 하나의 완결된 글입니다.


주석

1) 개인 정보 단말기(PDA, Personal Digital Assistant 또는 handheld PC). 스마트폰에 밀려 대중 시장에서는 사라졌지만, 물류 산업 계통에서는 여전히 사용 중이다. 외계인이 생각하는 지구의 최첨단 기기다. 외계인이 참고한 문헌은 다음과 같다. 듀나, 《대리전》, 이가서, 2006년.

2) 전혜진, 〈《대리전》과 함께하는 부천 산책〉, 《오늘의 SF #1》, arte(아르테), 2019년.

3) ‘앤서블’이라는 용어 자체는 어슐러 K. 르 귄이 창조하였다. 듀나의 문장을 빌려서 이 용어를 설명하겠다. ‘장르 작가들이 이 명칭을 사용할 땐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나도 이런 괴상한 기계의 과학적 근거 따위는 몰라. 하지만 그냥 무시하고 읽어줄래?”’ 작가 자신이 이렇게 말하는데, 이 기계의 정체나 작동 원리를 설명할 방법은 모르겠다. 단지 《대리전》에서의 역할은 말할 수 있다. 코어 앤서블은 온갖 난투극과 해괴한 현상들의 ‘코어’에 있다. 듀나, 《대리전》, 이가서, 2006년, 306쪽.

4) 달빛 모텔은 실제 부천에서는 찾을 수 없다. 위의 책.

5) 듀나, 〈대리전〉, 《두 번째 유모》, 알마, 2019년, 38쪽.

6) 이지용, 〈듀나론-모르는 사람 많은 유명인의 이야기〉, 《오늘의 SF #2》, arte(아르테), 2020년. 이다혜, 〈SF소설로 하는 ‘얼굴 없는 작가’ 듀나의 사고실험〉, 〈한겨레〉, 2019년 7월 12일. 재인용.

7) 듀나, 앞의 책, 32쪽.

8) 해결사’들은 은하 연합의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자들이다. 코어 앤서블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정신 무장을 하고 있으며 외계 문명의 무기를 소지하고 다닌다. 육체적 정체는 “부천과 안양의 교회에 다니는 보험 아줌마들”이다. 자세한 정보는 듀나, 〈대리전〉, 《두 번째 유모》, 2019년, 44쪽을 참고하라.

9) 듀나, 《가능한 꿈의 공간들》, 씨네21북스, 2015년, 257~258쪽. 이 용어가 최초로 출현한 곳은 다음과 같다. 듀나, 《용의 이》, 북스피어, 2007년, 391쪽. 2024년에 《너네 아빠 어딨니?》로 재출간되었다.


-

서애라

2022년에 제1회 SF스토리콘 최우수상과 제12회 현진건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