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 미래관리부, 우리의 미래가 거짓이라면 : 이건해 리뷰하다


필립 K. 딕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덕분에 범죄를 예견하고 미리 방지한다는 발상은 잘 알려져 있다. 예언자들이 미래를 보고 앞으로 일어날 범죄 사실을 알려 주면 담당 부서가 현장에 뛰어들어 범죄를 막는데, 하필이면 이 부서에서 활약하던 주인공이 범죄 예정자로 지목되어 직업윤리를 내팽개치고 도망친 후 사건의 배후와 시스템의 허점을 밝혀낸다는 것이 영화의 내용이다. 아무리 범죄가 예견된다 해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범죄로 사람을 처벌할 수 있을까? 처벌할 수 있다고 한들 예측 시스템을 완전히 신뢰해도 되는 것일까? 작동 원리조차 파악하지 못한 시스템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일은 과연 인류를 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 미래를 예측하는 사회에 따라오는 질문들은 이런 것들이다.

 

듀나의 〈미래관리부〉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다소 유사하게 출발한다. 인류는 ‘후손들’이 별안간 찾아와 미래를 조금씩 알려준 이후로 범죄부터 환경까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주인공은 이 ‘후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인 ‘신탁’으로, 예견된 살인 사건의 배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후손들’에 대한 해결할 수 없는 의문에 직면한다. 여기까지는 두 작품이 비슷한 구조로 보인다. 그러나 〈미래관리부〉에서 주인공은 미래를 전해 듣고 미스터리를 푸는 당사자가 아닌, 미래와 현재 사이에서 방황하며 변화하는 세상을 관찰하는 이에 가깝다.

‘신탁’의 혼란과 방황은 작품 중반부 ‘신탁들’이 만나 대화하는 장면에서 강렬하게 드러난다. ‘신탁들’은 82년 뒤의 ‘후손들’을 ‘요즘 애들’이라 부르며 2096년의 영화를 시시하게 여긴다. 그러나 이어진 사건 이야기에서 핵폭탄 테러리스트를 ‘아빠 총을 가지고 좋아하는 애들’ 같다고 개탄하다가 ‘후손들’이 보기에는 자신들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후손들’을 이해하기 힘든 신세대처럼 여겨보지만 자신들이 그들에 비해 한없이 철없고 열등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고등한 존재들을 접하며 느끼는 격차와 이질감은 머쓱한 침묵이 되는데, 이렇듯 부정할 수 없어 침묵하는 체념의 태도는 조금씩 이어지다 후반부에서 다시 표현된다.

작품 후반부는 당연하게 여겨 잊고 있던 의문을 지적하는 사건으로 진행된다. 기관 내에 숨은 테러 사건 용의자를 찾는 와중에 ‘미래관리부’ 장관이 직접 핵폭탄을 들고나와 ‘후손들은 미래에서 시간을 넘어온 후손이 아니라 외계인이며, 인류를 거짓 정보로 조종해서 정복하려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후손들’을 직접 만나 대화하고 싶다면서 테러를 벌이는 것이다. 장관이 주장한 ‘외계인 침략설’은 주인공에게 반박되고 테러도 빠르게 진압되지만, 주인공은 마음속으로 ‘침략’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못한다. 외계인이든 아니든 ‘후손들’이 인류를 자기 입맛대로 조종하는 건 분명 사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구 환경도 당장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산소를 호흡하긴 하는지도 모를’ ‘후손들’에 의해 점차 바뀌고 있다. 그들이 제시하는 방향이 옳은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인류는 모두 그들의 결정에 따르고 스스로 미래를 결정할 힘을 빠르게 잃어간다. 주인공은 100년도 지나지 않아서 인류가 ‘후손들’에게 통합될 거라고 예상한다.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 선택의 결과를 먼저 알고 싶어 한다. 그러면 불안 요소를 제거하고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관리부〉에서는 두 층위에서 이 문제를 지적한다. 결과가 보장된 결정만 존재하는 삶이 가치 있는 것일까? 확실하고 안전한 답만이 주어진 삶은 반대로 그렇기에 불안하다는 모순 위에 존재한다. 답을 얻기 위한 과정은 실패라는 위험과 불안을 피할 수 없는데, 그런 과정 없이 주어진 답은 그것을 상실했을 때 다시 얻을 방법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답이 처음부터 당연히 존재하는 게 아니라 어떤 존재가 주는 것이라면, 그 존재가 자연현상과 달리 의도를 갖고 있다면, 그 답이 우리가 원해야 마땅한 답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작중에서 ‘후손들’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 하는 장관의 테러는 이렇게 ‘안정적이지만 이해 너머에 있는 답’에 대한 불안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은 이를 인정하고 인류의 암담한 미래를 전망하면서도 벗어날 방법을 모색하지 못한다. 다만, 주인공은 ‘후손들’이 준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꿈 투사기’를 들고 애인과 보낼 시간을 기대하며 욕망이 남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데, 이 장면이 정말로 희망적인지는 알 수 없다. 행동을 정하는 원동력은 결과가 아니라 욕망이므로 욕망이 있는 한 나는 아직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애인을 욕망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자유롭게 불안정한 인간으로 보인다. 그러나 욕망의 결정체인 꿈속에서 자유를 누릴 기계를 선물한 ‘후손들’의 의도는 인류 욕망의 반경을 허상 속에 가두려는 것으로 읽힌다. 쓰이지 않은 소설의 뒷이야기를 상상하며, 선택 없는 삶이나 원치 않은 답에 실망한 주인공이 조만간 완벽한 꿈에 매료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지는데, 〈미래관리부〉의 주제를 생각하면 이 불안함마저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

이건해

소설가. 수필가. 2017년 미스터리 장편소설 《심야마장: 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한 뒤  2021년 황금가지의 SF 공모전에서 ‘자애의 빛’으로 우수상을 받았다.  2022년 브런치 주최 공모전을 통해 낡은 물건을 다듬어 쓰는 일에 대한 수필집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을 출간했다. 관련된 내용으로 잡지에 글을 쓰고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고, 이후로도 매주 수필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