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 여우골, 여우가 무슨 죄인가요 : 청예 리뷰하다


“내가 여우 소굴 안에 들어왔구나!”

그렇다면 이 소굴은 원래 누구의 것이었나.

 

단편 〈여우골〉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구미호 전설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오컬트 장르가 붐을 넘어 한국 콘텐츠의 대폭발을 일으켜 버린 요즘에 읽기 매우 좋은 작품임을 먼저 언급해 두겠다. 영화 〈파묘〉 속에 등장하는 ‘여우’라는 동물의 상징성을 생각해 본다면, 본 작품과의 연결고리 역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여우골〉의 묘미는 익숙한 설화의 사용이 아닌, ‘재독’에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 이유는 리뷰의 끄트머리에서 설명하겠다.

 

시간적 배경은 세조 시절, 공간적 배경은 강원도 산길이다. 선비 ‘이생’은 산적을 만나 있는 돈 없는 돈 다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그는 다행히 육척장신의 남성 ‘봉윤성’을 만나 구제받지만, 둘이서 여우 소굴에 들어간 바람에 목숨을 빼앗긴다는 스토리다. 이렇게만 보면 흐름이 제법 평이하게 느껴지겠으나 〈여우골〉에는 흥미로운 지점이 하나 있다.

 

“달기와 포사도 여우라고 하지 않소.”

 

은나라 주왕의 귀비인 ‘달기’와 주나라 유왕의 황후인 ‘포사’는 이른바 ‘악녀’로 설명되는 여성들이다. 동양 설화에서 여우는 인간을 홀려 장기를 빼 먹는 악한 짐승으로 묘사되는데(물론 이것에 동의하는 현대인은 없겠지만), 이 지점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어 신세를 망치게 하는 악녀의 특성과 비슷해 여우와 악녀는 서로를 상징하는 존재로 사용된다. 그러나 〈여우골〉에서 여우는 집단을 이루며 살아가기에 남성화, 여성화된 모습으로 등장한다(며느리와 시아버지). 이생 역시 여우가 여성의 형태로만 나타날 줄 알았을 텐데, 시아버지 모습으로 나타나 깜짝 놀랐을 것이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누그러뜨리고 본다면 이생이 놀랄 일은 아무것도 없다. 대다수 동물이 그러하듯 여우에도 암수가 존재하고, 여우가 나쁜 동물이라면 암컷 여우와 수컷 여우가 두루 나쁜 것이다. 편견을 깨는 시도는 이후에도 등장한다.

 



이미지 출처 : 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https://www.kmdb.or.kr/story/7/753 



 

“우린 너희들이 생기기도 전에 여기에 있었고 너희들이 떠난 뒤에도 있을 것이다. (중략) 언제부터 쥐가 고양이에게 쥐의 이치를 대더냐?”

 

나는 〈여우골〉이 단순한 동양 호러가 아님을 이 대목에서 알아차렸다. 작품은 여우에게 현혹되어 피해를 입은 인간을 가여워하거나 혀를 차는 이야기가 아니다. 작품 내 가해성을 가진 개체를 비난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예로부터 어떤 세계의 주인은 ‘비인간’인 여우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탈피한다. 여우의 대사를 본 이후에 나는 이생과 봉윤성을 향한 측은함이 해소되어 버리는(?) 신비를 경험했다. 비인간인 여우는 인간의 가죽이 필요하므로, 독립적으로 살아가지 못한다는 존재적 한계가 있고, 결국 인간과 특정 영역에서 삶이 교차할 수밖에 없다. 즉, 우리 세계에는 인간과 인간보다 위협적인 비인간이 공존한다.

 

귀여운 여우를 상상해 보자. 무리 생활을 하는 포유류답게, 그들은 가족 단위의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겠지. 엄마 여우, 아빠 여우, 자식 여우 혹은 딩크족이라면 부부까지만. 서울 외곽에 여우끼리 모여 사는 작은 동네가 있는데, 태어날 때부터 그들은 피부병을 앓고 있다. 그래도 걱정은 없다. 가끔 동네에 찾아오는 산짐승의 가죽으로 치료하면 되니까. 이렇게 바꿔보면 하나도 무섭지 않다. 오히려 여우들이 으쌰으쌰 산짐승을 몰고, 가죽을 벗기고, 서로 욕심을 내 아웅다웅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노라면 우리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단지 여우가 공격하는 존재를 인간에서 산짐승으로만 치환했을 뿐인데 그들의 삶을 긍정하게 된다.

 

이처럼 인간이 해를 입는 어떤 이야기들은 인간이라는 단어만 다른 것으로 바꾸어도 충분히 공감이 가능하다. 이것은 역으로, 우리가 얼마나 인간 중심적으로 사고하며, 삶이 유한한 생명체를 향해 품을 수 있는 보편적 공감까지 거세하는지를 알려준다. 〈여우골〉을 이생의 시각에서 초독했다면 여우의 시각으로 재독해 보자.

 

과연 누가 누구의 소굴을 위협하는 것일까? 혹은 그것이 정말로 ‘위협’일까?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동물들의 장기를 구워 먹고 삶아 먹고 쪄 먹는 인간이 할 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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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예

남 몰래 김치를 헹궈먹는 여자. 《라스트 젤리 샷》으로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 대상 수상, 《폭우 속의 우주》로 제2회 K-스토리 공모전 SF 분야 최우수 수상, 《사탕비》로 보슬비 청소년 SF 추천작에 선정됐다.